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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一心精到 豈不成功
卍 금강경 卍

지경공덕분 제.15권 = 경을 지니는 공덕

by 一切唯心造 108 2013. 3. 15.

持經功德分.지경공덕분 第 十五 권
경을 지니는 공덕

 


須菩提야 若有善男子 善女人이 初日分에 以恒河沙等身으로 布施하고 中日分에
수보리야 약유선남자 선여인이 초일분에 이항하사등신으로 보시하고 중일분에

復以恒河沙等身으로 布施하고 後日分에 亦以恒河沙等身으로 布施하여
부이항하사등신으로 보시하고 후일분에 역이항하사등신으로 보시하여

如是無量百千萬億劫을 以身布施이나 若復有人이 聞此經典하고 信心不逆하면
여시무량백천만억겁을 이신보시이나 약부유인이 문차경전하고 신심불역하면

其福이 勝彼하리니 何況書寫受持讀誦하여 爲人解說이리오. 須菩提야
기복이 승피하리니 하황서사수지독송하여 위인해설이리오. 수보리야

以要言之컨덴 是經은 有不可思議 不可稱量 無邊功德하나니. 如來爲發 大乘者說이며
이요언지컨덴 시경은 유불가사의 불가칭량 무변공덕하나니. 여래위발 대승자설이며

爲發 最上乘者說이니라. 

위발 최상승자설이니라.

(해설) 

수보리야,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아침에 항하 모래와 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

하고, 낮 에도 다시 항하 모래와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 하고, 저녁 때에도 또한 항하

모래와 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하여, 이와 같이 한량 없는 백천 만억겁을 몸 으로써

보시할 지라도, 만약 다른 어떤 사람은 이 경전을 보고 신심으로 거슬리지 아니하면,

그복이 저보다 승할 것이어늘 항차 이경을 등 하고 수지 독송하고, 남을 위하여

일러 줌이 겠는가. 수보리야, 한 말로써 하자면, 이경이 가히 생각할수 없고,

가히 측량 할수 없는 한없는 공덕이 있나니, 여래가 대승을 발한자를 위하여

설한 것이요, 최상승을 발한자를 위하여 설한것 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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若有人이 能受持讀誦하여 廣爲人說하면 如來 悉知是人하며 悉見是人하여 
약유인이 능수지독송하여 광위인설하면 여래 실지시인하며 실견시인하며 

皆得成就 不可量 不可稱 無有邊 不可思議功德으로 如是人等은 則爲荷擔如來
개득성취 불가량 불가칭 무유변 불가사의공덕으로 여시인등은 즉위하담여래

多羅三三菩提니라. 何以故오 須菩提야 若樂小法者는 着我見人見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하이고오 수보리야 약요소법자는 착아견인견

衆生見壽者見이라 則於此經에 不能聽受讀誦하여 爲人解說이니라. 須菩提야
중생견수자견이라 즉어차경에 불능청수독송하여 위인해설이니라. 수보리야

在在處處에 若有此經이면 一切世間 天人阿修羅의 所應供養이니 當知此處는
재재처처에 약유차경이면 일체세간 천인아수라의 소응공양이니 당지차처는

則爲是塔이라 皆應恭敬하며 作禮圍요하고 以諸華香으로 而散其處하니라.
즉위시탑이라 개응공경하며 작례위요하고 이제하향으로 이산기처하니라.

(해설)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수지 독송하고, 남을 위하여 일러주면, 여래가 이 사람을

다 알고, 이 사람을 다 보아 헤아릴수 없고, 일커를수 없고,한없는, 가히 생각지못할

공덕을 다 얻어 성취 하리니, 이러한 사람들은 여래의 아뇩다라 삼먁 삼보리를

짊어진 것이 되나니라.  어찌한 연고이냐, 수보리야. 만약 작은 법을 좋아하는 자는,

아견과 인견과 중생견과 수자견에 착하여, 곧 이경을 능히 알아듣고, 읽고,  외운다

든지 남을 위하여 해설하여 주지 못 하느니라. 수보리야, 간데마다 만약, 이 경만

있으면, 모든 세간의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가, 응당 공양하는 바이니, 마땅히 알라,

이곳은 곧 탑묘가 됨이니, 응당 다 공경하여, 예를 지어 둘러 싸며 모든 꽃과 향으로써

그 곳을 흩어 덮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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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지경공덕분 제15권 _((()))_

 
※ 해석.

이렇게 백천 만억겁을 두고, 사람의 몸을 수생  하기를 헤아릴수 없이 많이한 그 몸으로,

승사공양하여 보시할 지라도, 이경을 얻어듣고, 진심으로 믿는 복덕만 못하다는 말씀이니,

더군다나 서사수지독송하고, 남을 위하여 일러주는 공덕이야 말할수가 있겠는가,

하신 말씀 이시다. 아무리 부처님께서 천언 만어로써 이 경의 공덕을 찬탄 하실지라도,

믿어지지 않는 것이니,다만 자기본심을 반조 하여 스스로 얻음이 있기를 바란다.

 

물을 마시는 사람만이 차고 더운줄 아는 것이다.불교에는 대승소승 이란 말이 있으니,

본래 이 자리는 대소, 고하가 없는것이나, 사람의 근기에 따라 대 소승 으로 비교한 것이니,

대승은 기차와 같고, 소승은 자전거와 같다.

 

기차는 대승을 위한 것이요, 자전거는 소승을 위한 것이다. 나도 건지고 남도 건지는 것은

대승이요, 나만을 건지려고 하는것은 소승이다. 이법을 수행함에 있어, 상에 집착하여

닦는것은 소승이요, 상을 여이고 닦는것은 대승이다.

 

지옥을 싫어하고 천당을 좋아하며, 닦는것은 소승이요, 천당과 지옥이 둘 아닌것을

알고 닦는것은 대승이다. 여기 최상승이란 말이 있으니, 배움도 없고,

함도 없어 망상을 제하지도 않고, 참을 구하지도 않는것은 최상승이다.

 

그런데 이경은 대승심을 발한자와 최상승심을 발한자를 위하여 설한 것이라고 하셨다.

과연 그렇다. 나무를 얻어 가지 만지기가 기특한 일이 아니라, 천만길 되는 절벽에서

붙잡았던 손을 탁 놓아 버리는것이, 장부의 일인 것이다. 조구만 빕새가 어찌 대붕의 뜻을

알수가 있으랴. 백척 간두에서 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이경을 능히 수지독송 하고, 여러 사람을 위하여 일러주는 사람은,  이가 곧 여래의

둘도없는 가장 잘사는법을 자신있게 짊어지고, 몸을 바쳐가며 전법도생을 하는

대승보살이니, 작은 선 에나 집착하여 지옥을 피하고, 천당을 원하며,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을 구하는 소승따위의 유가 아니다.

 

소승은 항상 작은나(소아를 근본으로 하여 수행하기 때문에, 사상의 견해를 여이지 못하고,

상있는 작은 과를 좋아 하므로,감히 과 가없는 불과를 얻음이 없이, 얻을 생각을 하지

하므로, 아무데도 의지할곳이 없는, 이 경이,귀에 들어가지를 않기 때문에, 읽어 외울

생각도 없거니, 어찌 자기도 모르는것을 남에게 일러 줄수가 있을 것인가 말이다. 그러므로

알아라, 수보리야, 어느곳을 막론하고,이경의 진리를 신해수지 하는이만 있으면, 이 곳이

곧 부처가 계시는 도량 인지라. 모든 세간의 하늘이며,사람이며, 아수라들이, 다 모아

공양하며, 받들고 절하고 에워싸고, 꽃이며 향으로써, 그 곳에다 흩어놓게 된다는 말 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