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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 금강경 卍

비설소설분 제21권 = 말을 여읜 설법

by 一切唯心造 108 2013. 3. 15.

非說所說分 비설소설분 第二十一 권
말을 여읜 설법


 

須菩提야 汝勿謂如來作是念하되 我當有所說法이라하여 莫作是念이니라.
수보리야 여물위여래작시념하되 아당유소설법이라하여 막작시념이니라.

何以故오 若人이 言하되 如來 有所說法이라하면 則爲謗佛이라
하이고오 약인이 언하되 여래 유소설법이라하면 즉위방불이라

不能解我所說故일러니라. 須菩提야 說法者는 無法可說이 是名說法이니라.
불능해아소설고일러니라. 수보리야 소설자는 무법가설이 시명설법이니라.

爾時에 慧命 須菩提 白佛言하사되 世尊이시여 頗有衆生이 於未來世에
이시에 혜명 수보리 백불언하사되 세존이시여 파유중생이 어미래세에

聞說是法하고 生信心不이까 佛言하시되 須菩提야 彼非衆生이며 非不衆生이니
문설시법하고 생신심불이까 불언하시되 수보리야 피비중생이며 비불중생이니

何以故오 須菩提야 衆生衆生者는 如來說非衆生이요 是名衆生이니라.
하이고오 수보리야 중생중생자는 여래설비중생이요 시명중생이니라.  

(해설)

수보리야, 너는 여래가 이러한 생각을 하되(내가 마땅히 설한바 법이있다)고

이르지 말라, 이런 생각을 하지말라, 함은 어찌한 연고이냐, 만약 사람이 말하되,

여래가 설한바 법이 있다 하면, 곳 부처를 비방 하는것이 되고, 능히 나의 설한바를

알지 못하는 소이 이니라. 수보리야 설법이란 것은 가히 설할 법이 없음이,

이 이름이 설법이다. 저때에 혜명수보리 부처님께서 사루어 말하되 세존 이시여,

단지 중생이 오는 세상에 있어, 이 법을 설하심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오리까,
부처님 께서 말씀 하시되 수보리야 저희가 중생이 아니며 중생 아님도 아니니,

어찌한 연고이냐,수보리야 중생 중생이라 함은, 여래의 말로는 중생이 아니라,

이 이름이 중생 이니라



비설소설분 제 21권 = 설한 바 없는 설법_((()))_


※ 해석.


설법 이라는 것은 먼저 깨친자가 아직 깨치지 못한자를 위하여 깨치도록 말로

일러 주는것을 설법이라 한다. 그리하여 석가여래가 사심구년간에 걸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팔만사천의 법문을 설하신 것이 불교의 경전이다. 이러 하거늘,
이대문에 와서,부처님께서 말씀 하시기를 만약 어떤사람이 여래가 설한바 법이 있다고

말하면, 이것은 곳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요, 나의 설한바 뜻을 알지못하는 소이라

하시고, 또 말씀 하시기를 설법이란 것은 가히 설할법 없음이, 이 이름이 설법이라고

하시었으니, 이것이 무슨 말씀일까. 저 위에서도 말한바가 있거니와, 불법은 다른 학문이나

지식과 달라서, 배워서 아는것이 아니요,가르쳐서 아는것이 아니요. 아는 것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왜 그런가 하면,배워서 얻을수 없고,가르쳐서 얻을수 없고,아는것으로 얻을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법이 필요치 않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법은 본래 한물건도 없다.

이자리에 무슨법이 있고, 법을 설할자가 있고,법을 들을자가 있을것인가, 그러므로 설법이

필요치 않다.

 

그리고 또 이자리는, 구태여 말하자면, 성현이니 범부니 부처니 중생이니,

내지 개미벌레 까지라도,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고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 그러하거늘

누가 깬자 이고 누가 못깬 자이며, 누가 제도하고 누가 제도받을 자 인가, 그러므로 설법이

필요치 않다. 이러하므로 석가의 사십구년 설법이, 어떠한 일정한 법이 있어 설한것이 아니요.

구태여 설법이라는이름을 부치자면 가히 설할법이 없다는 말뿐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람마다 주리면 밥먹고 목마르면 물마시는 것이 누구에게 있어서나 동일 하기 때문이다. 

어찌 사람만 이러할 것인가, 짐승이나, 새나,벌레도, 다 그러한 것이다. 그리고 어찌 설법을

입으로만 하고, 말로만 하는것인가, 보라, 산과 물은 입이 있어도 상주 설법을 하고 있고,
꽃과새는 말이 없어도 때를 따라 설법을 하지 않는가. 옛날 현사스님은 법을 설 하려고

단상에 올라 앉았는데, 마침 들보위에서 제비가 지저귀는것을 듣고 말없이 그대로
내려오셨다 한다. 그리고 구지선사는 천룡 스님에게 손가락 선을 얻어 가지고 일생을 두고

손가락 하나로써 중생을 교화 하고도 남았다 한다. 이것이 모두 설법인가, 아닌가,
여래의 설하신법은 천언 만언을 하실지라도 상이없고 함이 없어, 종일 설하여도

설이 아닌 것이어늘,상에 속는 부처인 중생들은, 떨어지면 하나 하나의 법을 삼아 병 을

만드므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망각하기 때문에,하신 말씀임을 알아야 한다.


수보리는 후세 중생들이 이러한 심심 미묘한 법문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낼는지 걱정되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께서는 저희들이 중생도 아니요, 중생 아님도 아니라고 말씀

하시고, 이 까닭은 중생 중생 이라고 여래가 말한것은, 중생이 아니고 그 이름만이 중생

이라고 말씀 하셨다. 이뜻은, 중생이 아니라고 함은, 사람마다 본래 성불을 하였으므로

중생이 아니라는 것이요, 중생 아님도 아니라는 것은, 자기 자성이 틀림없이 부처인줄은

알았으나, 마치 죽순이 대나무 구실을 못 하듯이 부처가 부처 노릇을 못하고, 육진경계에

속아 탐진치의 번뇌를 이르키므로 중생 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중생이 아닌자는

부처이니 부처가 부처를 믿거나, 구할 필요가없고, 중생은 중생이니, 부처가 되기 위하여
부처의 말을 믿고, 육바라밀을 닦아 아뇩보리를 성취할것 아닌가 말이다. 그러므로

아니라는 중생이나 옳다는 중생이나 다 이름만 중생이지 중생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