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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一心精到 豈不成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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卍 향기로운 가르침 卍

방생공덕

by 一切唯心造 108 2020. 11. 22.

카톡에서

방생공덕

 

​ 가끔 이 사바세계에서 살아가는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너무 무감각한 것 아닌가?'

'목석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모래 위에

금방 잡은 물고기를 던져 놓으면

그 물고기는 숨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까지

쉬지 않고 파닥거리면서 살려고 발버둥 칠 것입니다.

물고기가 죽을 때의 그 공포와 두려움을 자신이

물고기라 생각하고 한번 눈을 감고 느껴보세요.

바로 나 자신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만약 생전에 게을러서 아무런 공덕도 쌓지 않고

업장을 참회하지도 않았다면

죽을 때 공포는 죽음을 기다리는 물고기의 고통이나

공포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두려운 고통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길고 긴 고통의 시작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저질러 놓은 전생의 죄업으로 인해 지옥에 끌려가면

쇳물이 끓는 용광로나 닭 튀기듯 끓는

기름에 죽지도 못하고 수없이 빠져야 되고

 

냉동된 쇠고기덩이처럼 죽지도 못하고

냉동창고에서 발가벗은 채 덜덜 떨어야 합니다.

 

횟집에서 살점을 발라내듯이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꼬챙이에 찔리는 고통을 당합니다.

 

이생을 하직 할 때의 고통도 크다지만

죽을 때 고통은 지옥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왜 이렇게 끔찍한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알고

인과를 온몸으로 인식하면 어떻게 함부로 살겠으며

정진하지 않고 게으름에 빠지겠느냐 이 말입니다.

 

스님들은 이 도리를 잘 알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마다

"공덕을 지어라! 참회해라! 계울을 지켜라!

선업을 닦으세요." 라고 하면서

손이 발이 되도록 당부를 하는데

 

들을 때는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돌아서면

다 잊고 사니 어찌 이 스님이 답답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깨달았다고 할 때 뭐 대단한 경지를 깨닫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놓인 처지를 확연히 알면 그게 깨닫는 것입니다.

 

그렇게 깨닫는 것이 바로 정진이고, 지견입니다.

깨닫고 나면 행동도, 말도,

생각도 함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깨닫고 나면 애지중지하는 내 몸만

내 몸이 아니라 남도 내 몸처럼 여기게 됩니다.

그 때 진정한 자비심이 우러나오게 됩니다.

 

불자에게 자비심은 깨달음의 증거요,목표입니다.

자비심을 닦는 수행이 바로 방생입니다.

 

물고기를 놓아주는 방생을 한다고

색다른 눈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방생만큼 사람들에게 자신의 업장을 바로 관하게하고

소멸시키는 수행도 없습니다.

 

"도구경"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한 사미가 화주를 나셨는데

도살자가 강아지 한마리를 죽이려고

준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미는 강아지가 두려워하며 도움을 구하는

참상을 보고 대비심이 일어나서 바로 도살자에게

강아지를 죽이지 말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도살자는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화를 내며 강아지를 죽였습니다.

사미는 어찌 할 방법이 없어 할 수 없이

강아지를 위하여 경을 외우며 회향하였습니다.

 

회향한 공덕에 의지하여 강아지는 죽은 뒤

바로 시주신도 집 안의 남자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남자 아이는 자라서

어느 날 탁발하는 그 사미를 만났는데

바로 전생의 모습이 기억나고

전생의 은인임을 알아보았습니다.

 

남자아이는 감격하여 사미 앞에서 삼보에 귀의하고

나중에 불퇴보리의 과위를 증득하였습니다.

 

불자들은 어딜 가든지

누구가 생명을 해치려고 하면 말라고, 어쩔 수 없다면

불보살님의 명호나 광명진언과 같은 주문을 외워

부처님의 가피를 입도록 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불자의 도리이며

사람의 도리이고, 자신의 공덕을 쌓는 길입니다.

 

" 혜총스님 법문"

=공양 올리는 마음, 도서에서 =

ilcheyusimjo108 올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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